신해철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90년대의 문턱에서 무한궤도의 리더의 데뷔 앨범이라는 형의 테이프 꽂이에 장식된 이 앨범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이미 가요 톱 10의 정상을 다섯번씩 휩쓸며 골든벨을 울리고 있었고 국민학생이던 우리들 사이에서도 우리만의 콩글 발음으로 재해석된 'RAP'이 불려지고 있었다.

지금 보니 왠 웨이터가 대기실에서 커피 한잔 하며 쉬고 있는 듯 하다. ^^ 테이프 버젼에는 없었는 속지의 안경쓴 사진은 영락없는 '윤상'이다.




1.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한참이나 후에 신해철의 인터뷰에서 언급으로 이 노래는 숱한 가요제 참가곡으로 '원경'이라는 인물의 작곡이다. 대학가요제 대상곡 '그대에게'의 Outro를 이 곡의 오르골 풍 음원으로 Intro로 차용했다. 지금 만큼 긴 이력을 가질 지 예상조차 못했던 시절 이미 그는 앨범 두 장째의 짧은 본인의 역사에 이런 재미있는 장치를 해 두었다.
앨범 전체를 풍미하는 지금으로서는 저조한 음원의 퀄리티는 조금 슬프기도 하지만 현재 노래방 사운드보다는 한단계 만큼 확실히 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근 10년간 엄청난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개인 사운드 카드 음원도 당시에 비하면 상당한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소위 MIDI를 한다는 사람들의 작품 중에 '저는 MIDI로 만들었습니다'하고 말해주는 듯한 사운드가 많은걸 생각하면 일찌감치 시퀀싱에 나타낸 그의 관심 덕분에 오늘의 그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재미있는점은 가요제 단골 낙방곡이 골든벨을 강타하는 히트곡이 되어버렸다. 도입부의 저음부분 만큼은 탁월하다.

2.떠나보내며
소위 "6/8박 슬로우"인데 후반으로 고조되어 감에 따라 장중해지는 훗날 지겨울 정도로 트레이드 마크가 된 사운드를 감상할 수 있다. 영미권의 70년대에나 들을 법한 Snare drum 소리가 조금 아쉽긴 하지만 남성편성이 뚜렷이 돋보이는 합창단의 코러스 만큼은 나름 완성도를 높여준다.

3.너무 어려워
요즘 들으면 이런 노래가 훨씬 좋다. 퍼커션 계통이 좀 티가 많이 나긴 하지만 깔끔하지 않은가.. '석 훈'이라는 작곡가는 도대체 누구인지 알 수 없으나 나름대로 잘 쳐준 리듬기타 세션에 비해 간주에 등장하는 기타 솔로는 너무 아마추어틱하다. 혹시 본인이 직접 친 건 아닌지 몰라도 무한궤도 시절 보다 못한것 같다. 도대체 무엇을 쳐서 메꿀지 망설이는 듯한 멜로디.. 엔딩 부분에서 스트링 섹션과 앙상블을 이루는 스캣성 애들리브.. 김현철의 데뷔작에서 그것에 비해 약간 쳐진다. 둘다 어설프기는 매한가지 지만...

4.P.m 7:20
감각적인 제목의 옛 동료 정석원의 재즈발라드 차용성 가요. 왜 이 시절에는 제대로 된 세션으로 분위기를 제대로 표현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캬바레 풍의 색스폰만 재즈의 분위기를 답습할 뿐이고 그루브가 전혀 없는 드럼은 미디같다.
정석원이 간간이 추구하는 스타일 중의 하나인듯.. 무한궤도 시절 '거리에 서면' 등..

5.함께가요
짙은 리버브와 파열음 가득한 스네어, 미디 티를 팍팍 내는 브라스, 노래방 풍의 리듬 섹션..
그 당시의 상황의 한계인것 같다. 간주의 기타 만큼은 볼륨주법, 김세황이나 할법한 하모나이저(저조하긴 하다만) 를 사용한듯한 아이디어, 후반부는 제법 와일드 하다. 왠지 무한궤도의 그림자가 많이 느껴진다.

6.안녕
지금 들어보면 베이스 라인이 참 딱딱하다. 요즘 세대들이 이 음침한(?) 댄스곡을 들으면 어떤 반응을 할까? 공전절후의 히트곡에 수긍할 수 있을까? 말도 안되는 한국 랩의 계보 따위를 따질 때 항상 1,2위를 다투는 랩 부분은 본인도 지금 들으면 민망할 것 같다. 하지만 참 참신한 시도다. 전체적으로 퍼커션 음원이 확실히 댄스곡들을 저조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 같다. 동시대 혹은 그 전시대의 영미권 팝과의 절대적인 차이는 퍼커션의 '실제 연주' 에서 오는 것도 크다고 생각이 된다. 하긴 10년 남짓에 우리는 전체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팝을 받아들이는 우리쪽 입장이 더 이득일 지도 모르겠다.

7.인생이란 이름의 꿈
신해철의 길고 긴 과제이자 테마인 자신의 성장과 꿈, 인생의 의미 등등을 고민하는 곡. 물론 이 곡은 정석원의 곡이며 정석원 역시 끊임없이 인생을 성찰하고 꿈을 그리는 테마를 연작한바 있다. 중반쯤 되면 어김없이 대형화된 스케일과 악기 선택은 훗날 거대한 발전을 이루게 된다. 지나친 '진지함과 무게감'이 장점이자 단점이 되기도 하지만 이제 이 방면에서는 국내에서 따라올 자가 없다. 유년기를 연상시키는 동요풍의 멜로디 역시 탁월하게 웅장함속에 녹아있다.

8.연극속에서
현재 시점에서는 들을 때 가장 좋은 곡이다. 촌스러울지 망정 뚜렷하게 공격적인 신스 베이스와 브라스 섹션.. 누군지 알 수 없는 기타 세션은 탁월하다. 톤이 다소 구리긴 하지만.. 왜 이 노래가 아닌 '안녕'이 히트를 치게 되었는지는(랩이라는 요소?) 알 수 없지만 너무 아까운 곡이다. 안녕의 싸비도 나름 중독성이 있지만 Q&A 형식을 가지는 이 곡의 싸비 역시 백번이고 따라 부르고 싶다. 중반부는 어김없이 웅장한 오케스트라 흉내와 이어지는 폭발하는 기타 솔로 무척 좋다.
샤프라는 감각적인 밴드의 대학가요제 입상곡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라든지.. 남성 듀오미스터 투'텅빈 객석'등등
콘서트의 끝나고 난 무대를 소재로 '축제 끝의 허무함'과 '인생'을 연결 한 주제의 노래는 굉장히 많다. 그 만큼 무대에 올라가야 하는 '광대'성 직업을 가진 이들에게 쉽게 눈에 띄는 소재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도 뚜렷히 공감하는 부분이다. 자신의 전부를 걸어 만든 '무대'는 불과 몇시간 안에 끝나버린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조차 기억나지 않을 정도의 흥분속에서 눈 깜짝 하면 '텅빈 객석과 무대'를 남겨둔 채... 이것이 인생 그 자체 일까? 그 기분 정말...

9.아직도 날 원하나요
이 곡에 대한 기억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는데 듣는 순간 깜짝 놀랐다. 이렇게 멋지고 세련된 Intro를 가지고 있었던가?  본 앨범에서 가장 세션된 퀄리티의 퍼커션(갯수가 많아서 그런지도..)와 초저음의 주절거림성 스캣 !! 조금은 흑인적이지 않은가? (^^) 기타 세션도 약간 어설픈 산타나 분위기에 준수한 편인데 베이스가 미디 티가 좀 팍팍 나서 아쉽다만 악기별 해상도가 가장 뛰어난 편이다. 수많은 안티 평론 중에서도 유독 단 한번도 욕을 먹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신해철의 훌륭한 '저음' 이다. 나름대로 국보급 '저음'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넥스트에서 목이 터져라 샤우트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 .. 좀 아이러니 하다.


10. 고백
군데 군데 김현식 풍의 뽕끼 가득한 멜로디는 취향의 연령대를 상당히 높이고 있다. 역시 캬바레 톤의 색스폰 유니즌이 그 것을 한층 더 배가 시킨다. 그래도 별로 '저급한' 느낌은 별로 없다. 캬바레 풍이라고는 했지만 색스폰 세션의 연주 자체는 굉장히 뛰어나다. 하루에 한장 씩은 돌려가며 신해철의 앨범을 듣던 학창시절에는 분명 가장 싫은 곡 중의 하나였던것 같은데 지금은 왜 이렇게 이 곡이 더 좋은걸까? 내가 그 만큼 나이가 들었을까?
과 선배 중에 트로트 가수를 하는 형이 몇 있다. 앨범을 내려고 한다면 리메이크로 꼭 실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트로트는 아니지만... 세련된 성인풍 가요로 손색이 없다. 아.. 정말 색스폰 잘 하는것 같다.
by 대학로인생 | 2006/06/22 14:54 | MUSIC REVIEW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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